어쩌면 남은 1년

2020-01-08

여명 1년

이 얘기를 들은게 작년 말이다. 11월 말 즈음이었다. 그러니까 의사의 말에 따르면 현재는 1년이 채 남지 않은 상태이다. 나는 이 얘기를 내가 직접 물어봤다. 병원에서는 의사의 성격탓이었는지 아니면 본인에게는 이러한 얘기를 잘 안해주는 것이었는지, 이 얘기를 해주는데 꽤나 소극적이었다. 그리고 내가 적극적으로 물어보자 오히려 의사가 당황을 했다. 보통 이렇게 환자가 적극적으로 물어보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집요하게 물어봤고 통계적으로 나와 같은 상태의 환자는 보통 1년 뒤에 죽는다고 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진 않지만 당시에 이 말을 들었을 때에도 큰 감흥은 없었다. 그냥 그렇구나.. 1년이 남았군. 정도의 느낌이었다.

물론 환자가 어떻게 치료받고 지내느냐에 따라 살 수 있는 기간이 달라질 수도, 암이 사라질 수도 있다. 마음가짐이나 몸상태에 따라 어떻게 될지는 정말이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남은 1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아직 나이가 젊으니 1년보다는 더 살아낼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할까 아니면 이 남은 1년을 죽기전에 잘 보낼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워야 할까.

버킷 리스트

암 선고를 받고나서 버킷리스트를 작성해보았다. 그런데 대부분의 항목이 암이 없어지고 나서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물론 지금이라도 다시 작성할 수는 있지만, 암이 있어 아픈 상태에서는 할 수 있는게 많이 없어 제한적이다. 여담으로 암 선고를 받자마자 전자드럼을 사서 쳐보기도 했는데, 체력이 확 떨어져서 걷기도 힘들어 지니 드럼에는 현재 손도 못대고 있다. 여행도 마찬가지이다. 체력과 돈이 있어야 가능한거다. 현재 제주도 한달살기를 목표로 제주도에 와 있는데, 체력이 안되니 힐링은 커녕 바다를 보거나 제주도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먹어도 별 감흥이 없다. 그래서 예정된 일정보다 먼저 올라갈 계획이다. 여행 준비는 은근히 체력이 많이 소모된다. 내가 여행의 디테일을 준비하기에는 체력적 부담이 컸다.

업무에 관련된 준비

사주팔자를 봤더니 2020년 4월에 완치에 가깝게 내 몸이 회복 된다고 한다. 그래서 항상 회사에 복귀하려는 준비를 위해 감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업무 관련 공부를 해야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암 선고를 받고 초기에는 동네 도서관에 다니면서 공부를 하기도 했다. 다만 심한 설사증상으로 체력이 확 떨어지고 나서부터는 거의 업무 관련 공부를 손에서 놓고 있다. 이 부분은 매일매일 체력이 되는 한 손에서 놓지 않으려고 하고 있다. 인강을 듣거나 토이프로젝트를 하려고 하고 있는데, 문득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부분은 믿음에 관련된 부분인데, 내가 곧 나을 것이기 때문에 준비를 하는건 쉽지 않지만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나는 지금 뭘하고 있나 생각이 드는 것이다. 지금 하고자 하는 공부가 의미가 있으려면 나는 암을 극복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죽음에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되버린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러나 저러나 공부는 나에게 도움이 된다. 비록 내가 먼 소풍을 가버릴지라도 공부를 하거나 개발을 하고 있으면 그 순간만큼은 몰입이 되어 예전에 아프기 전의 나로 돌아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나는 뭘 해야할까

물론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잘 먹고 잘 싸고 항암제도 잘 맞으면 된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겠다. 2020년 12월에 내가 뭘 하고 있을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확실한건 죽거나 일상으로 돌아와 있거나 둘중 하나이다. 뭐가 되었건 오늘을 잘 살아가면 된다.

거짓말

아무래도 나만 보는 일기장이지만 공개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글이 긍정적일 수 밖에 없나보다. 아직 나는 이런 공간에 내 깊숙한 마음을 쓰고 싶지는 않은가보다. 내 속의 이야기는 일기는 집에 있는 일기장에 적어야 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 공간의 글이 모두 거짓이라는 뜻은 아니다. 이 공간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 글을 쓰다보면 내 속의 긍정적인 생각들이 나와서 앞으로의 생활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