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자고 했다.

2020-01-18

원래는 결혼할 예정이었다.

오래 만난 여자친구가 있다. 2014년 소개팅으로 만나 사귀기 시작했고 여러헤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면서 만남을 계속 유지해왔다. 그러다가 슬슬 결혼 이야기가 나왔고 작년에 양가 상견례를 시작으로 우리는 본격적으로 결혼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우린 둘다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기에 하나하나 삽질을 하면서 그래도 나름 차근차근 재미있게 준비했다. 그 때 당시에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나는 주변에 결혼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다니지 않고 비밀로 했다. 아마 미리 결혼한다고 하면 주변의 관심이 부담스러워 그랬으리라.
우리 집은 천주교이고 여자친구 집은 기독교이다. 나는 이부분을 내심 걱정했는데, 여자친구는 잘 대처하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나의 부모님은 내가 성당에서 결혼하기를 희망하셨고 명동성당에 예약을 걸어놓으셨다. 그것도 내 생일이었다. 이 부분을 여자친구 부모님께 설득하기 어렵다고 나는 생각했는데, 의외로 쉽게(?) 통과되었다. 알고보니 여자친구가 중간에서 얘기를 잘하고 설득을 잘해서 가능한 일이였다. 나는 이 때 여자친구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내 생일은 9월 말이다. 그래서 작년 초부터 준비하기에는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고 우리는 느리지만 꼼꼼하게 준비를 했다.
그런데 천천히 준비한다고 해서 스트레스가 없는건 아니다. 우리 둘다 시간 짬을 내서 틈틈히 준비를 했고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나는 신혼집을 알아볼 때 동네에 발품을 엄청 팔았는데, 그 이유는 그 당시 살고 있던 원룸 계약기간이 맞지 않아서 부동산 대신 내가 새로운 세입자를 구해야 했다. 그래서 두배로 발품을 팔았고 여러 괜찮은 집을 원룸에 걸려있는 전세금 때문에 놓치고 있었다. 그러다가 정말로 운이 좋게 일주일 텀으로 원룸 계약과 신혼집 계약을 할 수 있었고 내가 먼저 이사를 가서 살고 나중에 여자친구가 들어오기로 하고 미리 가전 혼수도 채워 넣었다. 이사 금액도 아끼기 위해 나는 우체국에서 박스를 직접 낑낑거리면서 사왔고 집에 필요없는 물건들을 미리미리 버려두었다. 그리고 이사를 몇일 앞두고 나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몇일 뒤 나는 암선고를 받았다.

지옥의 시간을 버텨야 한다.

시간은 야속하다. 암선고를 받고나서 벌써 6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고 몇번 죽을 고비도 넘겼다. 지금은 그나마 혼자 밥해먹고 집근처 카페에 가서 커피 한잔 사먹을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최근 목표는 조금 더 살찌우고 체력을 회복해서 회사 관련 업무 공부를 할 계획이다. 계획대로 잘 되서 체력도 회복하고 종양도 줄어들고 없어져서 회사에 복귀했으면 좋겠다.
암선고를 받고나서 결혼 준비는 급브레이크를 밟은 것처럼 멈춰버렸다. 그 때부터 최근까지 여자친구는 속으로 스트레스와 상처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나만큼 힘든 시간을 감내해야 했고 주변에 말도 못하고 혼자 끙끙댔다고 한다. 나 혼자만 아프고 힘든줄 알았는데 그녀도 나만큼이나 힘들었을 것이다. 초반에는 여자친구가 병문안도 오고 많이 챙겨줬는데 내가 시야가 좁아지고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주었다. 그래서 여자친구에게 점점 병원도 오지말라고 하고 집에도 오지말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서로 보이지 않는 거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니 이 거리는 내가 스스로 만들기 시작한 것 같다.

생각을 해보았다.

아프고 나서부터 월급이 반이상으로 줄었음에도 소비가 늘었다. 평소에는 살까말까 고민 했던 옷이나 물건들을 꽤나 큰 고민 없이 턱턱 사기 시작했다. 물론 지갑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미친듯한 과소비를 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아프기 전보다는 확실히 유해졌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죽음에 대한 허망함도 있을테고 암으로 인해 생긴 마음 속에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계속해서 무언가를 사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계속해서 통장 잔고를 까먹으면서 이것저것 사도 마음속에 구멍이 채워지지는 않고 그대로인 것만 같아 더 슬프다.
최근에 제주도에 다녀왔다. 원래는 한달동안 살려고 했는데 엄마와 계속 싸우고 서로 맞지 않아 2주도 안되서 다시 올라왔다. 그래도 내려가 있는 동안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다.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할지에 대해.. 생각할 것들이 많았다. 그리고 더 늦기전에 여자친구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해보았다.

헤어지자고 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만나면서 만나고 헤어지고를 몇번 겪었다. 그래서 이제는 서로 챙길만한 기념일도 없어졌다. 서로의 생일 말고는 딱히 챙길 기념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조금 아쉬웠는데 지금은 그냥 서로 그려러니 하고 무덤덤해졌다.
제주도에서 나는 카카오 프렌즈에 갔다. 그리고 제주에서만 판매한다는 제주 라이언을 사서 낑낑대고 가져왔다. 오늘 나는 여자친구에게 빌려줬던 스위치도 받을 겸 집으로 불렀고 스위치를 받으면서 라이언 인형을 주었다. 여자친구는 인형을 좋아한다. 라이언을 보더니 소녀처럼 웃으며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앞으로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이제 서로 갈길 가자고. 물론 기다릴 수도 있겠지만 서로 나이도 있고 더 늦기 전에 다른 사람을 만나라고 했다. 나는 처음에 이 말을 무덤덤하게 꺼냈는데 여자친구는 바로 분위기를 파악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그런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처음엔 목이 메여서 말이 잘 안나왔다. 그래도 금방 감정을 추수리고 말을 이어갔다.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두서없이 여자친구에게 늘어놓았다. 그래도 금방 이해하는 눈치였다. 나는 당장 대답할 필요 없고 천천히 말해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여자친구가 울면서 말했다. 자기도 엄청 힘들었는데 내가 더 힘들어 보여 차마 말을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딱 거기까지였다. 여자친구는 오늘 당장 대답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나였어도 당장 대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얘기에 대해 엄마와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여자친구가 아픈 상황이었다면 재지 않고 결혼해서 여자친구를 지켜줄거라고 했다. 물론 엄마는 그런 나의 대답에 만족하지 못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딱히 신경쓰지 않았다.
여자친구가 울음을 그치고 우리는 동네 햄버거집에서 햄버거를 먹었다. 어니언링이 맛있는데 오늘은 마침 재료가 떨어져서 못먹었다. 햄버거를 먹고 어제 산 발 안마기를 서로 돌려 쓰면서 배부른 상태에서 우리는 티비를 보며 졸았다. 나는 그 사이에 아이패드 에어3세대를 팔았고 중고나라에서 곧바로 아이패드 프로3세대 거래 예약을 했다. 그리고 여자친구는 졸다가 깨어나서는 퉁퉁 부은 눈으로 집에 간다고 했다. 둘다 배부른 상태여서 나는 지하철 가는길에 있는 육교까지 여자친구를 데려다 주었다. 신호등 신호가 바뀌고 우리는 서로 안아주고 여자친구는 횡단보도를 건너갔다. 추운 날이었다. 목도리를 하고와서 다행이라고 했던 여자친구는 춥다며 얼른 횡단보도를 건너갔다. 신호가 바뀌었고 나도 집으로 돌아왔다. 평범했던 하루가 그렇게 지나갔다.

그저 그런 똑같은 하루가 지나갔다.

처음엔 서로 힘들것이다. 죄책감이 들지도 모른다. 그래도 사람을 잊는데는 시간이 가장 좋은 약일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힘든 기억을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날이 빨리 서로에게 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아니 아마 금방 올것이다. 이 지옥같은 시간을 벌써 반년 넘게 버티고 있는데 앞으로 다가올 행복한 시간이 늦게 다가올 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