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고있지 않다.
오랜만에 글을 쓴다. 그동안 여러일이 있었다. 항암제를 투여받아야 하는 몇일 전에 열이 나 응급실에 몇번 가서 항암이 두어번 밀렸었다. 응급실에서 바로 아산병원에 입원이 되었으면 좀 더 좋았을텐데 갈 때마다 병실이 없어서 매번 다른 근처 병원에 입원을 해야만 했다. 병원의 질이 나쁘지 않은 곳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열악한 곳들도 있어 오히려 입원을 했는데 몸이 더 안좋아지는 것 같은 곳도 있었다. 그리고 요새 코로나19 때문에 병원들의 출입과 관리가 빡세져서 더욱 더 힘들기도 했다. 아산병원은 규모가 크지만 그만큼 사람도 많이 와서 이번 사태에 사람들이 더 몰린듯 하다. 한번은 규모가 작고 상태가 좋지 못한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아산병원 입원대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워낙 그 병원의 상태도 좋지 못했고 병원보다 집에 있는게 내 상태에 더 낫다고 생각이 들어서 골골대면서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다. 그 뒤부터는 왠만하면 무리하지 않고 집밖에도 멀리 안나가면서 최대한 응급실에 가지 않으려 노력하고는 있는데.. 그 때문인지 집에서 멍하니 있으면서 점점 바보가 되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아무리 내가 무리를 하지 않아도 다양한 이유로 몸이 삐걱거리면서 어쩔 수 없이 응급실에 가야하는 경우도 생긴다.
최근에 별다른 무리를 하지 않았음에도 항암이 밀리고 응급실에 간 이유는 소화기관에 문제가 생겨서이다. 위와 장으로 가는 길에 십이지장이 막혀 현재 내 몸속에는 스텐트가 들어있다. (처음에는 몇개가 들어갔는지 알고 있었는데 이제는 몇개가 들어갔는지 기억도 안난다.) 근데 이 스텐트가 막히거나 정상적인 동작을 안하거나 종양이 자라서 음식이 내려가는 길을 막으면 음식을 거의 먹지 못하게 된다. 최근에 이 스텐트에 문제가 생겨 응급실을 몇번 갔었는데, 내 생각에는 스텐트 자체에 문제가 있다기 보다 종양이 스텐트 길을 막아서 문제가 생긴듯 하다. 슬프게 지금도 몇일 전부터 음식을 거의 못먹고 있다. 일단은 항암일정이 또 밀리면 안되니까 최대한 버텨볼 생각이긴 한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몸 상태가 안좋아져 가기도 하고 코로나19 때문에 요새는 거의 집에만 있는다. 그리고 필요한 경우에만 근처에 잠깐 나갔다 오는 정도이다. 집에만 있으면 참 할일이 없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 티비를 틀어놓고 멍하니 있게 된다. 그리고 최근 증량한 손발저림약(리리카) 이 있다. 이 약의 부작용이 잠이 오는 건데 아침 저녁으로 먹어야 한다. 나는 이 약을 먹으면서 '약에 취한다'는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정말로 잠이 쏟아져서 능동적인 행동을 거의 할 수 없게 된다. 나도 모르게 거의 자다시피 졸게 되서 티비를 틀어놓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없다. 집에서 이렇게 멍하게만 있다보니 답답한 마음에 여러 계획을 세우게 된다. 운동을 더 한다던지, 독서를 더 적극적으로 하는등의 계획을 세웠는데 게으름이 몸에 베어버려서 지금은 게임조차 안한다. 공부할거리는 쌓여만 가는데 나는 지금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
취미를 가져볼까 생각했다.
이렇게 집에만 멍하니 있자니 바보같아 지는 것 같기도 하고 심심하기도 해서 집에서 할 수 있는 취미가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너무 티비만 봐서 눈과 머리가 굳어지는게 아닐까 싶어 라디오를 사서 들어보기도 하고, 블루투스 스피커를 사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어보기도 했다. 독서가 참 좋은 취미로 보이는데 요샌 책도 눈에 잘 안들어온다. 몇번 진득히 앉아서 읽어보려고 시도 해봤었는데, 매번 오래가지 못했다. 그래도 병원에 입원하지 않은 상태엔 그래도 책을 읽어보려 시도는 하고 있다만 아직까지 성공하진 못했다.
곰곰히 생각을 해보다가 레고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싶어 레고를 사보려고 했는데 종류가 너무 다양해서 뭘 사야할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가격이 너무 비싸서 많이 사기에 엄두가 나지도 않았다. 그래서 레고는 일단 접어두었고 방향을 조금 돌려 조립pc를 만들어 보려고 최근 몇일동안 이것저것 알아봐서 부품을 사고 있다. 이를 위해 플스도 중고로 팔았다. 플스를 팔았다니 이 무슨 바보같은 말인가 싶을텐데, 손 끝에 감각이 떨어져 있는 상태에서 조이스틱으로 게임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게임을 하기 위해 티비를 세팅하고 하는데 있어서 귀찮음이 있기도 했고 fps를 즐겨 하는데 플스로 하기엔 손이 잘 가지 않아 결국 팔아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자원으로 조립pc를 맞춰 fps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다. 아직 부품들을 알아보고 사모으고 있는 상태라 이 취미가 나에게 얼마나 잘 맞을지는 모르겠다.
몸이 점점 망가져 가는 것 같다.
슬금슬금 몸이 안좋아지는게 느껴진다. 괜찮은 날들도 있지만 이제는 몸이 괜찮은 날을 셀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몸이 안좋은 날엔 예전보다 몸이 더 안좋아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는 않다. 얼마전에 굿을 하는 점집에 가서 점을 본 적이 있었는데 나는 병으로 죽지 않고 병이 나을거라고 했다. (물론 고액의 굿을 하라고 해서 바로 나오긴 했다만..) 듣고 싶은 말을 듣고만 나온게 아닐까 싶긴한데 그래도 이런 작은 믿음들이 있으면 투병생활에 어느정도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모르긴 몰라도 여명을 말하는 의사와 완치를 말하는 점쟁이 둘중 한명은 맞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일테다. 그리고 그 둘 중에 어떤 말이 맞는지는 내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결정이 될 것이다.
몸이 점점 망가져 가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버텨가고 있다. 의사는 지금 내 상태가 나이 먹은 노인이었으면 힘든 상태였을 거라고 한다. 아직까지는 젊음으로 지금 상태를 버티고 있는거다. 언제까지 버텨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버틸 수 있을 때까지는 버텨야 한다.